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21년 미얀마 쿠데타 (문단 편집) === [[8888 항쟁]]의 악몽 === [[미얀마]]의 군사독재 기간은 [[1962년]] [[네 윈]] [[미얀마군]] [[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사회주의]] 독재 체제를 세운 이후 2015년 총선에서 민주화 세력이 승리하기 전까지 무려 53년 간이었다. 오랜 기간의 군부 통치 속에 미얀마 내 시민사회 세력들은 사실상 역량을 상실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1988년도에 군부의 독재에 대항해 일어났지만 군부는 유혈 진압으로 대응, 당시 미얀마 시민 3,000여 명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10,000여 명이 실종됐다. 그래도 8888 항쟁의 결과로 [[네 윈]]이 실각하고 사회주의가 철폐되면서 잠시 민주화의 바람이 불며 1990년에 자유총선이 치러지기는 했다. 이 시기에 연방이 버마 족만의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천명하기 위해,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신생 군부세력들은 자신들의 국민통일당이 선거에서 패하는 결과가 나오자, 선거결과를 무효화하고 다시 독재정치를 펼치며 시위의 성과도 일장춘몽이 되어버렸고, 2007년에도 승려들을 필두로 또다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으나 이마저도 유혈진압으로 실패했다.[* 1988년부터 2021년까지, 시민들을 학살하기 위해 군부가 동원하는 부대는 로힝야 학살과 소수민족 반군 토벌을 하던 부대와 동일하다.] 이로써 미얀마에 자유총선이 다시 치러질 때까지 22년의 세월이 흘렀으며 이것마저 반쪽자리였으며 결국 정권이 교체될 때까지 25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자신들의 권한이 위협당할 경우 미얀마 군부가 시민들에게 어떠한 만행을 할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고 또한 시위로 얻은 성과가 어떻게 빼앗길 수 있는지를 똑똑히 목도한 미얀마의 많은 수의 기성세대들은 사실상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은 포기한 상태다. 군부에서 통금령을 실행하자 전날 10만명이 운집했던 양곤 시위의 참가 인원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 정도.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20910500002477?rPrev=A2021021010530003872|#]] 물론 군부도 미얀마 시민들이 유혈진압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거리낌없이 쿠데타를 실행했고, 그 후 어김없이 시위대에 무차별 총격을 명령하면서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bGpGQ08gQs|#]]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